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이 되라
/ 법정 스님
올 한 해도 저물어 갑니다.
저도 오늘 나오면서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가,
제 삶의 자취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과연 잘 산 한 해였는지 잘못 산 한 해였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끔씩은 그 말이 실감 납니다.
하지만 그런데 속지 마십시오.
세월은 가지도 오지도 않습니다.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사물과 현상이 가고 오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 자체는 항상 존재합니다.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을 뿐입니다.
시간 속에 사는 우리들이 오고 가고 변해 가는 것입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시간 자체나 세월이 덧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속에 사는 우리들이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고
늘 한결같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덧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생애 중에서 한 해가
이와 같이 신속하게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들은 한 살이 보태집니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한 살이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면 우리 생이 무척 아깝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한 번 지나가면 되찾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선방에 이런 표지가 있습니다.
‘생사사대 무상신속(生死事大 無常 迅速).’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나고 죽는 일입니다.
한순간이라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리저리 흔들리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생사입니다.
우리 삶에서 생사는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 생사 속에서 무엇이 받쳐 주고 있는가?
무상이 신속하다는 것입니다.
한순간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변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
리가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엉뚱한 길로 나아가고,
한 생각 바로 정신을 차리면 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는 분이 택시를 타고 길상사로 가자고 하니까
택시 기사가
“아, 그 부자 절 말이죠?” 하더랍니다.
‘부자 절’이라는 그 말이 제게는 한동안 화두가 되었습니다.
8년 전 이 절을 처음 만들 당시,
교회나 절 어디 할 것 없이 물질이 넘치고
과소비가 지나치기 때문에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었습니다.
그런데 물론 일부에서겠지만
길상사를 부자 절이라 일컫는 것을 보고 매우 착잡했습니다.
요정이던 대원각을 절로 만들 때
신문 방송에서 얼마나 시끄럽게 떠들었습니까?
땅이 수천 평이고 땅값만 수백억이라는 보도가 나와서
부자 절이라는 인상이 심어진 것 같습니다.
한동안 여러 곳에서 저한테 편지가 많이 왔습니다.
주로 물질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절을 저의 개인 소유로 잘못 알고
도와 달라는 편지들이 와서 곤혹스러웠습니다.
부자의 뜻은 대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 보면 부자는 살림이 넉넉한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고 간단명료하게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라는 항목 아래에 이런 속담들이 나 옵니다.
‘부자가 더 무섭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 보다
부유한 사람이 더 인색하다는 말입니다.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나눌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
그만큼 많이 축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또 ‘부자에게도 한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아무 걱정 없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부자가 되기까지 나름대로 한이 맺혔을 것입니다.
가난을 면하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긁어모은 결과로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
저는 이 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은 농경사회에서 이루어진 속담입니다.
옛날에는 지주들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말기나 일제강점기 때
못된 지주들이 소작인들을 얼마나 많이 수탈했습니까?
‘부자가 하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는 것은
그 인근 사람 들이 다 착취당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경전에는 탐욕이 바로 생사윤회의 근본이 라고 적혀 있습니다.
탐욕이란 지나치고 분에 넘치는 욕심입니다.
자기 그릇보다 더 많이 채우려고 하는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얼마만큼이면 만족 할까요?
이것은 있는 사람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가진 것만큼 행복한가?
물론 어느 정도 관계는 있겠지만
행복은 가진 것에 의해서 추구되지 않습니다.
행복은 결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찾아지는 것입니다.
똑같은 조건에 있으면서도 누군가는 행복을 느끼며 살고
누군가는 불만 속에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너나없이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본능적인 소망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국이나 강대국들이
온 세계를 자기네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소리입니다.
더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경제적 침략입니다.
정당한 노력에 의해서 재산을 모으지 않고
투기 같은 것으로 급작스럽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갑작스런 부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자기 그릇에 채울 만큼만 지녀야 하는데,
훨씬 많이 채우려고 하니 넘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지금까지의 삶의 소중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착실하게 노력하면서 살아온 삶의 질서에 혼란을 가져옵니다.
인간관계의 소중함도 상실되어 버립니다.
세상에 공것은 없습니다.
횡재를 만나면 반드시 횡액을 당합니다.
그것이 인과관계입니다.
물질이란 그런 것입니다.
부는 홀로 오는 법이 없습니다.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20여 년 전 어느 절에서의 일입니다.
한 스님이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난데없는 행운에 착실하게 기도를 하던 스님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우선 은사 스님한테 자동차를 한 대 사드렸다고 합니다.
얼마 안 있어 자기도 차를 사고,
그때부터 생각이 달라지더니
결국 동네 처녀와 눈이 맞아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 후 들리는 이야기로
그는 택시 기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난이 미덕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맑은 가난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탐욕을 버리고 분수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지나친 소비와 넘침에서 벗어나
맑고 조촐하게 가질 만큼만 갖자는 뜻입니다.
누가 진정한 부자인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덕을 닦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덕이란 무엇인가?
남에 대한 배려입니다.
남과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은 근본적으로 내 소유가 아닙니다.
단지 어떤 인연에 의해서
우주의 선물이 내게 잠시 맡겨졌을 뿐입니다.
바르게 관리할 줄 알면 그 기간이 연장되고,
마구 소비하고 탕진하면 곧 회수당합니다.
뜻밖의 물질이 생기면 조심스럽게 생각하십시오.
정당한 소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옳게 쓰면 덕을 쌓고 잘못 쓰면 복을 감하게 됩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부유하다고 해서 늘 부유하란 법 없고,
지금 가난하다고 해서 계속 가난하란 법 없습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창조적인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축적할 수도 있고,
있던 것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세상과 작별하게 될 때 무엇이 남습니까?
홀로 있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
평소에 지은 업을 가지고 갑니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평소에 지은 업만 그림자처럼 따라갑니다.
인도 사람들에 따르면 바로 그것이 다음 생을 이룹니다.
무엇이든 갑자기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수많은 시 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서 되는 것입니다.
가까운 예로, 스님들 중
이번 생에 처음 출가한 사람은 쉽게 정착하지 못합니다.
2, 30년이나 승가에 몸담았으면서도
택시 운전사로 돌아가는 것을 보십시오.
하지만 몇 생을 이 길에서 닦은 사람들은 죽어도 떠나지 않습니다.
업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과 행위를 하는가가 곧 다음의 나를 형성합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스스로가 다음 생의 자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길상사를 일부에서 부자 절이라고 한다니,
과연 그렇게 불릴만한 절인 지,
이곳에서 수행하는 스님들과 신도들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가질 때,
청정한 수행과 올바른 가르침으로써
믿고 의지 하는 도량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아름답고 길상스러운 부자 절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 들이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 사십시오.
부자 부럽지 않게 잘 사십시오.
- 2005년 12월 11일 길상사 창건 8주년 법문
출처: 월간 맑고 향기롭게 산방한담(山房閑談) 2018년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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